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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그 안에 숨은 인식

사회대 시연 (siyeon2088@daum.net)

정인이 사건? 아동학대 사건?

2021년을 맞이한 지 한 달도 안 된 현재, 한국 사회를 가장 뜨겁게 하는 것은 ‘정인이 사건’이다. 정인이 사건은 양부모의 학대로 인해 아동이 사망한 사건이며, 이에 대해 시민들은 엄청난 분노를 느끼고 있다. 법원 앞에서 가해자를 사형하라며 시위를 하거나 양부모가 법원으로 이동할 때 소리를 지르고, 이송 차량에 눈을 던지는 등의 모습을 보면 그 분노를 짐작할 수 있다.

아동학대에 무관심했던 과거와는 달리 관련 범죄에 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상에 대한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먼저 피해자를 강조하는 명칭의 문제, 그리고 사건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현상들의 문제점이다. 아동학대의 전반적인 내용을 고려하여 대안을 내놓기보다는 양부모에 대한 분노, 입양 가족 문제로 귀결한다.

충남 아산 어린이 교통 사건, ‘민식이 사건’이 그랬듯, 아동에 관련한 사건은 분노를 통해 논쟁거리가 되고, 이후 법 제정으로 마무리되는 과정을 겪는다. 이번 학대 사건 또한 이 과정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아동학대와 관련한 사건이 지속해서 가시화된 상황임에도, 왜 참혹한 아동학대 사건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일까. 아동학대가 이슈가 되었지만, 아동학대 기저에 있는 인식에 대해서는 논의된 적이 없다. 이제는 아동학대에 영향을 미치는 전반적인 내용, 특징에 대한 논의와 그로 인해 도출되는 아동학대 신고 시점에서부터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실질적인 법 제정과 정책 시행, 아동학대 근절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 글은 좀 더 거시적인 시각에서 아동학대의 특징과 원인을 살피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아동학대 현주소

아동학대는 부모, 대리양육자 등 보호자와 더불어 성인이 아동에게 가하는 육체적, 정신적 폭력을 말한다. 아동학대는 신고 건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범죄의 피해자가 아동이라는 점과 대부분 가정에서 사건이 발생하는 점에서 집계되지 않은 사건 수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2018년 기준 아동학대 행위자 고소·고발 등 사건처리 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 전체 아동학대 사례인 24,604건 중 학대 행위자를 대상으로 고소, 고발 등의 사건처리 조치를 취한 것은 7,988건이었다. 이 중 경찰 수사만 이루어진 사례는 3,038건, 검찰수사가 이루어진 사례는 1,807건이다. 검찰수사 중 진행 중인 사례는 856건, 불기소된 사례는 521건, 형사 기소는 21건이었다. 재판 진행 중인 사례는 737건이고 수사 미진행·처벌법 조치 완료는 539건이었다. 법원 판결을 받은 사례는 1,705건이었고 그 중 보호처분이 1,081건, 형사처벌이 266건, 기타 385건이었다. 이런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형사처벌보다는 수사 중 불기소나 아동보호 송치사건으로 넘겨 보호처분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동학대가 강력한 형벌만이 정답은 아니나, 보호처분은 가해자에게 비교적 매우 가벼운 판결이라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학대 행위자의 비율은 부모(76.9%)가 가장 높았으며, 그중 친부(43.7)와 친모(29.9)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정인이 사건에서 양부모의 문제로만 규정하는 것은 아동학대에 대한 시각을 좁힌다는 것을 알려주는 통계이다. 아동학대는 혈연가족과 입양 가족 모두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이러한 통계는 ‘보호자가 가해자’라는 아동학대의 특징이 드러난다. 피해자는 가족, 즉 보호자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어있고, 보호자 없이 자립적인 생활하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피해사실을 알리기 어렵고, 알린다고 해도 생활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원가정 보호주의로 인해 피해아동은 기존 가정에 머물거나, 분리조치가 이루어져도 다시 원가정으로 복귀하는 비율이 높다. 이는 재학대 사례에서도 똑같다. 아동은 주양육자가 돌보아야 한다는 강한 관념으로 인해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재학대 비율을 높이고, 피해아동은 정서적, 신체적으로 가정에 속박되어있을 수밖에 없다. 보호자가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아동은 다시 가해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아동학대 가해자 중 80%는 부모이고 그들 중 60%는 과거에 학대 경험이 있었다. 이는 아동학대 대물림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피해아동은 불안정한 어린 시절 경험으로 인해 성인이 된 후에도 지속적인 트라우마를 겪고,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이 있을 확률이 높다. 또 피해자 자신이 아이를 양육할 경우, 과거의 경험에 근거한 기준으로 아이를 훈육하기 때문에 또다시 학대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아동학대, 원인은? ‘인식’

아동학대의 원인은 위에서 언급한 특징과 연결된다. 가정에서 이루어지고, 보호자가 가해자이며 피해자가 아동이기 때문에 신고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 학대의 경험으로 인한 학대의 재생산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조금 더 거시적인 원인은 무엇이 있고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아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아동에 대한 성인의 관점이 어떠한지를 생각해야 한다. 아동은 순진무구한 존재로 인식되고, 때문에 훈육의 대상이 된다. 아동은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하등한 존재로 여겨진다. 이에 기반한 결과가 체벌이다. 성인이 되면, 어떤 일을 잘못했을 때, 말로 혼이 날 수도 있지만 체벌을 받지는 않는다. 아동의 경우 잘못했을 때 체벌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성인 간의 관계에서 상대에게 의도적으로 해를 끼치는 행위는 이유가 무엇이든 형사적 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보호와 교양 목적의 징계라는 말로 상대에게 의도적인 해를 끼쳐도 된다고 법을 허용하는 유일한 대상이 아이들이다. 이는 아동을 동등한 인격체로서 보지 않고, ‘때려서 교정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한 결과이다. 폭력은 권력관계가 형성되어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성인과 아동은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형성되어있고 이는 가정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가정 안에서는 아동의 생존이 결정되는 경제적인 이유도 포함되어 그 권력관계는 더욱 불평등하게 형성된다. 최근 친권자의 자녀 징계권이 삭제된 민법 개정안이 의결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훈육을 위해 체벌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성인이 아동을 보는 인식과 연관되어있으며, 그 속의 권력관계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체벌과 훈육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있지 않다는 인식이 부족한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또한, 아동은 부모의 소유물로서 여겨진다. 부모가 자녀를 훈육하는 과정에서 체벌하는 것은 당연하고, 부모가 지시하는 방향대로 성장해야 한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이러한 인식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가족 동반 자살’이다. 아동이 자살에 동의했는지는 미지수이며 부모가 아동의 생사마저 결정할 수 있다는 인식이 반영되었다. 흔히 가족 동반 자살이라고 칭해지는 사건들은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후 자살하는 경우다. 때문에 이를 ‘동반 자살’이라고 칭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현상 기저에는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자신(부모)과 자녀의 자아를 분리하지 못하고 자녀의 인생이 따로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태도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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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아동학대는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분리가 원인으로 작용한다. 사적 영역은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불가침의 영역처럼 여겨지며 그로 인해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불개입성은 사적영역의 폭력을 국가가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것이다. 아동학대를 조사하는 과정에 이러한 점 때문에 난항을 겪는다. 학대예방경찰관(APO)가 존재하지만, APO는 소송에 휘말리기 쉬워 기피 보직으로 여겨지고 있다. 즉, 학대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를 조사하는 것조차 어려움이 있다. 더불어 사적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은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지 공적영역이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여겨진다. 아동학대를 가정에서 일어나는 훈육의 하나로 보고, 개인적인 가정사로 취급한다. 이러한 사적영역과 공정영역의 분리가 아동학대를 음지화하고 논의 밖으로 몰아낸다.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해서

아동학대는 아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원인이며,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변화가 꼭 필요하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며,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가족’에서 꼭 자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는 무조건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는 통념에 기반한 원가정보호는 학대를 재발하게 하고 가정에 고립되게 하며, 시설이나 쉼터에서 자라나는 피해아동에 대한 낙인을 유발한다. 또 아동을 성인과 동등한 인격체로서 인식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아동은 보호자의 소유가 아니며, 권력관계에서 하등한 존재가 아니다. 인식변화를 위해 부모 교육을 제도화하고, 아동에게 독립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등의 대안이 존재한다. 이런 전반적인 인식변화가 아동학대를 근절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제는 아동학대를 단순히 가정 내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범죄로 규정해야 한다. 폭력이 벌어지는 곳을 자율성이 보장되는 사적 영역이라고 할 수 없다. 해당 범죄가 공적 가치인 인권을 침해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폭력이 일어나는 공간(예-가정)을 더 자세히 조사하고, 피해아동을 사회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가정에서 분리된 아동이 생활할 수 있는 양질의 시설을 제공하고, 육체적·정신적 치료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더불어 가정을 조사해야 하는 APO에게 불이익을 피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여 더 적극적인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논의된 적 없는 ‘아동’에 대해서 논의해야 한다. 아동을 무조건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로서 설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아동이 살아가는 가정이 효과적인 울타리가 되는 것과 넘지 못하는 벽이 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억압적인 보호 혹은 단순 방임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과 지원제도가 보장된 사회에서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행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사회를 위해서 아동학대에 대한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며, 인식 변화와 이를 통한 법과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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