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아직 귀가하지
못한 자들의 복귀를 위하여
윤수, 병호
자가격리의 특권
마스크 착용, 2m, 37.5℃, 14일. 계속되는 위기에 코로나19 예방매뉴얼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지자체의 안전안내문자는 외출 자제를 요청한다. 맞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감염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에 머무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문 하나 걸어 잠그고 피할 수 있는 위험이었다면 불평등이란 말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안전한 안과 위험한 밖의 이분법에 가려진, 분명한 경계만큼 불분명한 삶들이 있다.
자가격리수칙이 말하는 ‘안에 있음’이란 “독립된 공간에서 생활하기”1)로, 홈리스와는 무관한 이야기이다. 정부의 방관과 미흡한 대처 그리고 사회의 편견과 무지 속에서 집 없이 또는 집 아닌 집을 전전하는 자들의 일상은 언제나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왔고 전례 없던 전염병은 그들의 삶을 더욱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이 글은 홈리스를 단순히 방역의 사각지대로 치부하는 것에 반대하는 바, 홈리스를 향해 가해지는 편협한 인식을 지적하고 코로나19를 전후로 지속하고 심화하는 문제를 조명한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이 그러하듯 홈리스 또한 가시권 밖에 있는 까닭에,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은 드러내기로부터, 즉 자신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지겨운 반복설명이나 외부에 의한 가능한 온전한 규정에서부터 시작한다. 홈리스homeless란 글자 그대로 집home이 없는less 자로, 정확히는 빈곤상태에서 주거권2)을 박탈당한 자를 가리킨다. 노숙인 개념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를 대체하기 위해 제시된 용어이다.3) 길거리와 지하철역뿐만 아니라 시설·사우나·찜질방·PC방·고시원·쪽방·판자촌·비닐하우스 등과 같이 열악하고 불안정한 주거환경에서 살아간다면 홈리스에 해당한다. 한국의 경우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으나 유엔의 홈리스 기준을 적용시키면 약 26만명으로 추산된다.4)
그들은 어쩌다 홈리스가 되었나. 홈리스의 출현이 사회적 문제라는 점에 주목하자. 각기 다른 사례들은 공통적으로 구조적 원인과 개인적 원인을 날카롭게 나누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5) 조사에 따르면 홈리스상태에 진입하게 되는 주된 원인은 실업이나 사업실패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가정폭력6)이고 이외에도 장애나 정신질환으로 인해 정상적 생활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단순히 상태를 기술하는 용어로는 심각성 파악에 한계가 있기에, 좀 더 거시적인 분석틀이 필요하다.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자리 잡은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경제적 격차는 줄곧 벌어졌고 자본의 분할통치는 민중을 분열시켰다. 홈리스가 급격히 증가한 것도 이때다. 깊게 뿌리내린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사회구조적 비극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환원시킨다. 자본의 전략에 대한 성찰 없이 '노력×경쟁=보상'의 공식을 내면화한 사회에서 각자도생은 당연한 것이 된다. 끝없이 경쟁하고 불안감에 허덕이기에 도움이 절실하나 사회도 국가도 믿을 수 없다. 파편화된 대중 틈에서 보편적 권리를 호소하는 사회적 약자는 비정상적이고 정당한 노력 없이 남의 자리를 꿰차려는 혐오대상으로 비춰진다. 결국 홈리스의 출현이 드러내는 것은 무능력한 개인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고질적 신념체계, 그리고 사회안전망의 결함이다.
그러므로 나눌 수 없는 고통은 나누어져야 하고 연대는 유일한 대안이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자본주의가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이라면7) 우리는 결코 혼자 지나가고 싶지 않다. 게다가 서로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고통이 아래로만 흐른다는 것이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지 않았나.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한다면 다음으로 넘어가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먼저 홈리스가 처한 현실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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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도 사람이 산다
홈리스가 사는 곳은 대체로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비적정주거시설로, 그곳은 자가격리가 통용되지 않는 공간이다. 최대한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다닥다닥 붙어있는 쪽방은 창문이 있는 경우가 드물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시설이며 관리상태는 비위생적이다. 특히 여름마다 찾아오는 폭염과 장마철 침수로 쪽방촌 주민들은 가능한 밖에 나와 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며 주민 상당수가 고령에 기저질환 보유자임을 감안할 때, 쪽방촌 내 집단감염 발생은 그 여파가 매우 우려스럽다.8)
누구보다 취약할 수밖에 없는 홈리스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적절한 대책이 시급한데, 아직까지 정부와 지자체의 움직임은 지지부진하다. 이런 시기에 대구시가 관련 기관과 협력하여 거리홈리스와 쪽방주민들이 전염병과 폭염의 이중고를 피할 수 있도록 임시주거지를 제공한 것은 비록 일시적이나 바람직한 예시이다.9)
아무도 모르게 추방당하다
안식처는커녕 아무것도 막아주지 못하는 ‘집’이지만 홈리스에게는 어디까지나 최후의 피난처이다. 그러나 그런 집마저 때려 부수거나 그곳에 사는 사람을 끌어내려는 일들이 지금까지도 벌어지고 있다.
도시재개발의 이면에는 강제철거로 인한 홈리스의 생존 위기가 있다. 서울시는 2019년 10월 중구 양동에 대한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변경안’을 통과시켰고 지난 6월을 기준으로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10) 애초에 쪽방이 밀집한 양동 11지구의 입지를 고려해 변경된 정비계획이었으나 변경안에는 정작 쪽방 주민들을 위한 재정착 지원이나 피해보상 계획은 없었다. 홈리스행동 등 시민사회단체에 따르면 주민들을 향한 협박과 회유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동자동 쪽방촌은 2015년 서울시가 지정한 후암동 특별계획구역에 포함되어 재개발 대상이었으나 5년간 민간개발의 움직임이 없어서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환원되었다. 양동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2021년까지 정비기본계획의 재수립이 예정되어 있기에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11) 부디 서울시가 2008년 용산참사를 잊지 않았길 바란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강제퇴거’를 기념해야 할 듯하다. 홈리스들은 도시재개발로 인한 강제퇴거의 위험 말고도, 경제악화로 인해 그나마 있던 일용직 일자리마저 잃어버려 저렴 주거시설에서조차 월세를 낼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상시적인 강제퇴거 압박으로 이어진다.12) 한편, 서울역과 용산역에선 대합실이 폐쇄되고 노숙물품 강제철거가 무분별하게 일어났다. 코레일은 방역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이는 홈리스를 역사에서 몰아내기 위한 그럴듯한 구실에 불과하다. 노숙물품은 쓰레기가 아니며 일정한 거처가 없는 거리홈리스에게는 집과 마찬가지이다.
강제퇴거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홈리스들에 대한 강제퇴거는 오히려 정부의 방역대책 수행을 더 어렵게 만들고 홈리스들의 주거권과 건강을 위협할 뿐이다. 주거권과 방역은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주거권이 보장될 때, 홈리스가 안전한 주거공간에 접근할 수 있을 때 성공적인 방역도 가능하다.

집 없이는 먹을 수도, 아플 수도 없다
주거권을 박탈당한 홈리스들은 안정적인 월급제 일자리를 어렵게 구하더라도 이를 유지하기 힘들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 돈과 거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먹고 사는 전반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따라서 홈리스들은 급식소 배급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공공의료를 통해 최소한의 보건서비스를 제공받는다.
그러나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으로 인해 홈리스들이 주로 가는 민영 무료급식소들이 다수 문을 닫았다. 그러자 홈리스들은 몇 없는 공영 급식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공영 급식소에 사람이 몰리면서 급식 경쟁이 벌어졌고,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홈리스도 늘어났다. 코로나 19로 인한 ‘급식 대란’을 계기로 적정 주거 보장과 함께 권역별 공영급식소의 확충 필요성도 제기되었다.
이번에는 의료적 측면을 보자. 코로나 19의 국내 확산이 시작되면서 많은 공공병원이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었다. 서울시는 2월 25일, 6개 시립병원의 일반 진료를 축소하고, 코로나 19 비상진료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만성질환 관리와 일반진료가 필요한 시민들에게 일반 병·의원을 찾을 것을 당부할 것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비(非)홈리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홈리스가 갈 수 있는 의료기관은 수가 적은 공공의료기관뿐인데, 이들이 코로나 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홈리스가 갈 수 있는 병원은 더욱 줄어들었다. 해당 조치는 곧바로 홈리스들의 ‘의료 공백’ 위기로 이어졌다.
지자체의 ‘노숙인 의료급여’를 지원받는 일부 홈리스들은 노숙인 진료시설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홈리스는 노숙인 진료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 경제적인 여건으로 일반 병·의원 방문도 힘들다. 따라서 홈리스의 건강을 위해 의료급여제도 조건 개선, 의료접근성 향상도 갖추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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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주거권에서부터
잠시 최근 이슈를 말해보겠다. 연일 신문에서는 부동산 이슈로 화제다. 특히 임대차보호법의 경우, 입법취지가 임차인 보호라 그런지 임대인의 반발은 거세고 세입자 사이에서는 당장 집주인이 임대료를 확 올리지는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다. 개정된 법이 바람직한지 여부를 떠나 공론장에서 드러난 것은 전세 값이 폭등할까봐 혹은 전세매물이 사라질까봐 걱정하는 서민들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꼭 홈리스가 아니더라도 대다수가 안전한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집이란 무엇인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집은 자본주의적 욕망을 머금은 투기 상품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집은 어디까지나 삶의 기본적 토대이며 주거권은 시민으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다. 따라서 사회는 방역을 핑계로 홈리스를 내쫓는 것이 아니라 주거권이라는 보편적 가치 위에서 방역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이 홈리스와 연대함으로써 주거권의 확립을 향한 움직임을 벌여야 한다. 누구에게나 돌아갈 곳이 있다.
[각주]
1) 질병관리본부가 내놓은 자가격리대상자 생활수칙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생활하기: (세부지침) 방문은 닫은 채 창문을 열어 자주 환기 시키기, 식사는 혼자서 하기, 가능한 혼자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과 세면대가 있는 공간 사용하기”
2) 다음은 현행법상 주거권과 관련된 부분이다. 헌법 제35조 제3항: 국가는 주택개발정책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주거기본법 제2조(주거권): 국민은 관계 법령 및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물리적ㆍ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
3)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노숙인 법) 제2조 제1항: “노숙인 등”이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 중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사람을 말한다. (가) 상당한 기간 동안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 (나) 노숙인시설을 이용하거나 상당한 기간 동안 노숙인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 (다)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할하는 사람. 언뜻 보면 홈리스가 추구하는 의미가 세 항목에 걸쳐 두루 반영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행 노숙인 법은 모호한 규정을 통해 정책대상의 확대를 교묘히 피해간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매년 발표하는 ‘연도별 노숙인 등 현황’ 통계자료를 보면 분명해진다. 노숙인은 자활·일시보호·거리노숙·재활 및 요양의 네 가지 영역에 해당하는 자이며 쪽방주민은 별도의 대상이다. 즉, 정부가 인정하는 ‘노숙인 등’은 거리홈리스, 시설홈리스, 쪽방주민에 국한된다.
4) 최정윤, “"한국 홈리스 26만명"…유엔 특보, 주거안정 대책 마련 권고”, https://www.sedaily.com/NewsVIew/1VGK7GMADG, 서울경제, 2019.03.12., 검색일: 2020.08.09.
5) 다음 문헌을 참조할 것: 구인회·김소영, 「노숙 진입의 원인과 과정」, 『한국사회학회』, 제46집 제4호, 2012.; 김소영, 「청년노숙 경로에 관한 연구: 노숙진입과 노숙생활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6.
6) 가정폭력은 여성홈리스가 홈리스상태에 진입하게 되는 주요 원인이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여성홈리스의 수는 남성홈리스에 비해 절대적 소수인데, 이는 젠더화된 경험, 즉 여성홈리스가 여성으로서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위험 등에 노출되는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다. 남성홈리스를 피해야 하기 때문에 시설이나 쉼터 이용이 쉽지 않고 여성으로 보이지 않게 머리를 짧게 깎는 사례도 있다., 이성은·고은정, “2010 서울시 노숙인 지원정책 성별영향평가”, 서울시여성가족재단, 2010, 17-19쪽 참고.
7)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서울: 문학과지성사, 2003), 14쪽.
8) (주관적 건강상태) 자신의 주관적 건강상태가 ‘나쁨 또는 매우 나쁨’ 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39.3%인 반면, ‘좋음 또는 매우 좋음’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9.6%로 나타났다. (질병 유병실태) 질환 종류별 유병률(진단 받은 적이 있는지 물어본 결과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고혈압ㆍ당뇨병ㆍ고지혈증 등 대사성질환(36.1%), 치아질환ㆍ잇몸질환ㆍ치아결손 등 치과질환(29.5%), 조현병ㆍ우울증ㆍ알코올중독ㆍ약물중독 등 정신질환(28.6%) 순으로 나타났다., “2016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통계결과표[최종]”, 보건복지부, 2017, 10쪽 참조.
9) 김현목, “대구시, 취약계층 감염병·폭염 이중고 해소 온 힘”, 경북일보, 2020.06.09.,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42550, 검색일: 2020.08.09.
10) 김희진·윤기은, “‘재개발로 퇴거 위기’ 서울 양동·동자동 주민들 “쪽방 떠나면 노숙””, 경향신문, 2020.06.1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6172124005, 검색일: 2020.08.09.
11) 이원호, “서울지역 5대 쪽방의 실태 : 서울역 편”, 홈리스행동, 2020.07.15., http://homelessaction.or.kr/xe/index.php?document_srl=830717&mid=hlnews, 검색일: 2020.08.09.
12) 박윤경, “코로나 실직에 쪽방·고시원서 쫓겨날 신세 “강제퇴거 유예 조처를””, 한겨레, 2020.04.28.,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42422.html, 검색일: 2020.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