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누가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을까.

사회대 형호 (jjune112@daum.net)

전운이 감도는 아시아, 위기의 한반도

매년 초 신문에는 국제관계가 1면에 실리고, 방송국들은 앞 다퉈 국제정세를 보도한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바로 ‘핵核’이다. 핵은 일차적으로 ‘핵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핵무기’를 먼저 떠올리곤 한다. 핵무기를 가진 강대국들이 한국과 인접해있고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북한의 무력도발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핵을 익숙한 존재로 받아들여 왔다.

문제는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국제정세에 극도의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핵’을 둘러싼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중 간 무역 갈등은 점차 군사적 갈등으로 번지며 아시아 전역을 위협하고 있다. 또한, 경제적·군사적 패권을 확장하려는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과 이를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아시아를 무대로 크게 대립하고 있다. 아시아에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하고, 중거리핵전력조약 탈퇴를 선언한 미국. 남중국해에서 연일 무력시위를 벌이는 중국. 이 두 국가를 중심으로 아시아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문제의 시야를 한반도로 축소해본다면 북한을 빼놓을 수 없다. 북한은 지금까지 지속적인 핵실험과 도발을 감행하며, 일방적인 외교로 세계평화를 압박해왔다. 한편 북한 비핵화와 대북 제재 완화를 둘러싸고, 2018년 제1차 북미정상회담에서는 협상국면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듬해 열린 제2차 회담에서 합의가 결렬되었고, 북미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이후 북한은 초대형방사포를 발사하거나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공개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나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반도는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핵이 평화를 만든다고?

오늘날의 고조된 군사위기는 핵의 위협을 가중한다. 우리는 핵무기에 익숙하지만 그것이 주는 고통은 잘 알지 못한다. 세계최초로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는 한 해 동안 약 60만 명이 열선과 폭풍, 방사선 피폭으로 죽거나 다쳤다. 피해자의 42%는 행방불명되었고, 한국인 피해자 또한 약 7~10만 명에 달했다. 폭심지로부터 1km내의 대다수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핵 투하지역의 주민들은 일상을 빼앗기고 신체 및 정신 건강에 종합적으로 피해를 입으며, 이는 삶을 살아가는 내내 지속된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피해가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핵이 떨어진 후 76년이 지난 지금까지, 후세대는 방사능과 유전적 영향으로 소화·생식·호흡·신경·정신 장애 및 질병을 앓고 있다.

이처럼 핵무기는 기존의 재래식 무기들과는 전혀 다른 파괴력을 보여준다. 핵은 단 한 발로 넓은 지역의 생명과 환경을 순식간에 전면 초토화시켜, 인간의 모든 활동을 중단시킨다. 또한 전투원과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해 사회의 존립 자체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인류가 인류를 파멸시키는 핵무기는 지금 당장 금지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단순히 허울 좋은 말, 도덕적이지만 현실성 없는 말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국가들은 핵무기를 금지하기보다 핵보유국과 동맹을 강화하고 핵우산에 들어가려했다. 더 나아가, 핵을 공유하거나 직접 수중에 넣어 무장해야 한다는 입장도 존재한다. 이들 입장의 논리는 핵의 엄청난 위력이 오히려 전쟁을 막으며 평화에 기여해왔다는 것이다. 즉 핵을 보유하고 과시하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공격을 방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핵 억제이론’이다. ‘핵 억제’란 상대국에게 ‘적대행위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보복을 당해 입을 피해가 더 크다’는 점을 각인시켜, 상대의 공격을 방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타당한 것일까? 핵에 대한 공포가 균형을 이루게 한다는 논리는 ‘불신’과 ‘신뢰’라는 역설적인 조합으로 구성된다. 상대국이 언제든 공격할 수 있다는 불신과 공포에, 상호 파괴적인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대국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더해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쿠바 미사일 위기는 핵 억제이론의 허구성을 과감히 드러낸다.

쿠바 미사일 위기

1962년 냉전 초기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려던 미국의 시도가 실패한 후, 소련이 쿠바에 핵무기 배치를 제안하면서 쿠바에 미사일 기지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과 소련 및 쿠바 사이에서 군사갈등이 심화되었다.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이 사건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미사일을 철수하겠다는 소련의 제안을 미국이 받아들이며 마무리되었다.

놀라운 것은 당시 미국이 10월 24일 쿠바 미사일 기지 대규모 공습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28일 소련이 미사일 철거를 발표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수행될 계획이었다. 한편 소련은 미국을 향해 배치한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했는데, 미국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앞서 미국이 공습작전을 수행했다면, 미사일은 그대로 미국 본토를 향해 날아갔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핵에 대한 통제가 얼마나 허구적이고 자의적인지 잘 보여준다. 상호 불신하는 국가의 지도부가 합리적인 판단만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유사시에는 제한된 정보와 시간을 가지고 신속히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언제나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 볼 수 없다. 이 사례는 핵 억제전략이 전제하고 있는 ‘상대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매우 주관적이고 낙관적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평화는 무력으로 유지될 수 없다”

쿨피스 통계.png

맨해튼 프로젝트를 촉발한 아인슈타인이 평생을 후회하며 반핵운동에 나서서 했던 말이다. 이는 핵 억제이론의 구조적인 한계를 한 마디로 드러낸다. 바로, 핵이 국가 간 상호 불신을 유지시키고, 연쇄적인 군비경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핵보유국들은 계속해서 핵무기의 양을 늘려갔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핵무기 운반체와 이동식 미사일을 개발해 신속성을 강화했다. 냉전이 극에 달하던 1986년에는 미소 양국의 핵무기 보유량이 7만여 개에 달했고, 이로써 선제공격과 보복을 언제든지 빠르게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한 국가의 군비증강이 다른 국가의 군비증강을 불러오는 현상을 ‘안보딜레마’라고 한다. 안보딜레마는 핵보유국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핵무기 개발에 자극을 받은 국가들에서도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전력 차이가 크게 나거나 자국의 공격이 무력화될 경우 억제는 실패하기 때문에, 한 국가의 군비증강은 필연적으로 상대국의 군비증강을 자극한다. 결국 힘의 균형을 맞추기를 통한 평화 유지는 군사력의 균형 맞추기가 아닌, 상대보다 우위에 서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된다. 즉, 안보딜레마는 핵무기 확산을 낳고 더욱 불안정한 체제를 형성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최근 핵보유국들의 전략이 핵 억제이론을 넘어, ‘승리하는 핵전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의 핵공격을 무력화할 수 있는 방어무기와 정밀타격이 가능한 핵무기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다는 구상이다. 이에 따라 현재의 핵무기는 엄청난 파괴력으로 상대를 겁주는 용도로만 개발되지 않는다. 이제는 실제 전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저강도의 전술핵무기가 개발·배치되고 있다.

그러나 방어무기로 여러 방향에서 다양한 고·각도로 날아오는 핵들을 요격하는 것은 어렵다. 공격용 핵무기로 은폐된 핵무기와 핵심 시설을 일시에 파괴하는 것도 기술적인 측면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에 언제나 뒤따르는 보복도 감수해야 한다. 또한 상대가 핵을 쏘기 전에 먼저 그 핵을 제거하는 ‘선제타격 옵션’은 군 수권자의 신속한 판단과 결정을 요구해, 오인과 극단적 행동을 유발하고 핵전쟁의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결국, 핵무기로 평화를 유지한다는 것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자

평화는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평화를 이룩하는 방법은 제각기 다르다. ‘평화’가 무엇인지 서로 생각하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가져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평화로 가는 쉬운 지름길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역설적인 안보논리와 군사주의 노선은 오히려 평화와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핵무기를 일체 금지”하는 것이다.

과거부터 전 세계 핵무기의 완전한 제거를 목표로, 국제 반핵평화운동은 ‘핵무기금지조약(TPNW)’을 설득해왔다. 핵무기금지조약이란, 핵무기의 개발·시험·생산·비축·사용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최초의 국제 합의다. 올해 1월 22일, 이 조약은 마침내 발효되어 국제법적 강제력을 갖게 되었다.

물론 핵무기금지조약의 발효가 핵무기 철폐로 곧장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9개의 핵보유국과 한국 등 핵우산에 들어간 국가들은 핵무기금지조약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핵무기금지조약이 핵을 진짜 금지할 수 있을지 의문도 존재한다. 하지만 핵무기금지조약은 핵군축을 압박하는 효과를 가진다. 예를 들어, 미국은 다른 나라에 핵무기 금지조약에 비준하지 말거나 탈퇴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지금까지 전례가 없던 일로, 핵보유국이 국제 핵군축 여론에 압박을 느낀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한편, 핵무기금지조약 같은 시도의 성공사례는 이미 여럿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핵무기와 함께 대량살상무기에 속하는 생물무기와 화학무기는 각각 생물무기금지협약과 화학무기금지협약으로 사용이 억제되었다. 이제 우리는 ‘합의를 거친 평화’가 아니라 ‘평화를 가져오는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핵무기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핵무기금지조약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특히, 핵무기가 고밀도로 다량 배치되어 있고 핵전쟁의 가능성 또한 가장 높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핵무기금지조약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한다.

평화를 기원하는 것을 넘어, 연대의 힘으로 평화의 물결을 만들자!

물론 핵무기금지조약 비준이 비핵화를 가져오고 전쟁의 가능성을 낮추는 전부는 아니다. 공통의 약속과 함께, 군비증강 및 전쟁 유발요인을 지속적으로 견제하는 움직임이 동반되어야한다. 그리고 이 움직임은 시민들의 결단과 평화운동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왜 정부나 대통령이 아닌, ‘시민’이 주체가 되어야할까? 그 이유는 핵무기가 반정치적이기 때문이다. 핵무기는 인간의 삶과 사회 존립을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정치를 근간부터 흔든다. 핵전쟁의 특성상 신속대응과 선제공격이 중요해 소수 국가행위자의 핵무기 통제가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박한 상황 속에서는 합리적 판단이 어렵고 기계 오작동, 군사정보 미전달 등 작은 실수만으로도 사태를 전쟁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

핵무기는 시민의 삶과 직결되어 있지만, 시민의 통제와는 분리되어 있다. 이 속에서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회복시키는 것은 결집된 시민의 힘을 토대로 한 반핵평화운동뿐이다. 핵 위협 없는 세계에서 평화롭게 살 권리를 널리 설득하는 운동은 반핵 여론을 형성한다. 이로써 대중적 기반을 갖추고, 실질적인 비핵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1950년대 초, 미소 간 핵 대결에 맞서 일어난 스톡홀름 어필 서명운동은 5억 명 이상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이 운동을 통해 핵무기를 시민들이 통제할 필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이후 핵무기에 대한 감시망이 펼쳐졌고, 전 세계의 광범위한 행동으로 확대됐다. 그렇게 이어진 반핵운동은 1963년 핵실험금지조약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1970년대에는 방사능 방출을 최대화한 중성자탄의 배치에 맞서 유럽 전역에서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이렇게 성장한 평화운동은 1991년까지 핵무기 2,692기를 폐기하도록 이끌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평화운동은 무력 사용을 최소화하는데 결정적으로 역할 해왔다. 지금처럼 군사갈등이 증폭된 상황에서, 국가 간 적대와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전 세계 시민이 함께 평화를 외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2020 원수폭금지세계대회는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평화를 모색하는 자리가 되었다. 전 세계 청년학생과 활동가들이 모인 이 대회는 피폭의 경험과 상처를 나누고, 전쟁의 온도를 낮출 수 있는 연결고리를 발굴해갔다. 대회에서, 뉴욕 피스액션 활동가 에밀리 루비노는 “어떤 문제든 해결을 위해서는 모든 문제의 관련성을 간과해선 안 되고, 모든 운동을 관통하는 공통의 영역이 무엇인지 주목하며 전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시작은 평화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공감대를 확장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다음은, 구체 동향에서부터 평화의 목소리를 내어 반핵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평화가 없다면, 그건 우리가 서로에게 속해있다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이다. 핵이 만들어낸 가짜 평화의 통념은 세계 공동체의 평화를 짓밟고 새로운 전쟁과 피해자를 또다시 낳는다. 핵의 존재 자체가 인류를 상시적인 위협에 빠뜨린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이해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쟁 없는 세상이라는 인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자!

쿨피스3.pn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