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닐하우스에 사는 사람
편집위원 현지 (hyunjee0905@gmail.com)

▲ 지난 12월, 이주노동자 속헹 씨가 사망한 포천의 비닐하우스 숙소
집,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 그러나 벽과 지붕만 있는 것을 두고 집이라 할 수 없으며 인간이 살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인간이라면 적절한 주거에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권리를 바로 ‘주거권’이라고 한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고, 이주노동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 12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잠을 자던 이주노동자 속헹 씨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번 한파에 열악한 숙소환경과 더불어 난방장치가 고장났던 것이 사망원인으로 추정되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애도와 함께 대책을 마련하라며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다.
속헹 씨의 사망은 이주노동자의 주거권이라는 문제를 던지기도 했지만, 한국 사회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전반적 태도와 처우가 어떠한가 보여주는 사건이다. 많은 이주민이 한국에 와서 정착하거나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이들을 받아들이고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는 법과 제도들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사건 자체에서 드러났던 이주노동자 숙소 제공과 관련한 문제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주노동자의 발목을 잡는 고용허가제까지. 우리가 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것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이주노동자와 주거권
비닐하우스.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표현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만, 이는 농가에서 활용하는 대표적인 이주노동자 숙소다. 대개 농지 중간에 있는 비닐하우스 안에 조립식 패널이나 컨테이너를 세워 개조해서 사용한다. 집에 냉난방 장비는커녕, 화장실 같은 기초적인 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재해에도 취약하여 작년 여름 홍수 피해 이재민의 대다수가 비닐하우스 거주 이주노동자였다는 기록도 있다. 거기다 통상 월 20만~30만 원 가량의 숙박비까지 사용자에게 지불하고 있다. 이런 숙소는 현행법상 당연히 불법이다. 근로기준법에는 ‘숙소 제공’에 관한 기준이 규정되어 있음에도, 2020년에 속헹 씨가 사망하기까지 이르렀다.
이주노동자의 주거권 문제가 화두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부산에서는 컨테이너 숙소에서 난방기구를 사용하다 화재가 발생해 이주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주노동자의 주거시설과 환경의 기준을 마련하라는 성명과 국민청원으로 「외국인고용법」이 개정되며 다음과 같은 조항이 신설되었다. ‘사용자가 외국인 근로자에게 기숙사를 제공하는 경우 「근로기준법」제 100조에서 정하는 기준을 준수하고, 건강과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 기준이 되는 「근로기준법」에는 ‘사용자는 소음이나 진동이 심한 장소, 산사태나 눈사태 등 자연재해의 우려가 현저한 장소, 습기가 많거나 침수의 위험이 있는 장소, 오물이나 폐기물로 인한 오염의 우려가 현저한 장소 등 근로자의 안전하고 쾌적한 거주가 어려운 환경의 장소에 기숙사를 설치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도 추가되었다. 즉,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쾌적한 주거를 제공할 것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해당 기숙사 조항에 미달하는 기숙사를 제공했을 경우 사업주를 처벌할 수는 있으나, 법정 최고형은 벌금 500만 원에 불과하다. 더욱이 속헹 씨의 사건이 있었던 농업 사업장의 경우, 대부분 상시 노동자가 5인 미만인 사업장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적용마저 제외되어 처벌을 면한다. 이때문에 관습처럼 이주노동자에게 비닐하우스 숙소가 제공되어 왔고, 정부 실태조사에 의해면 실제 70% 정도의 농축산업 종사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와 같은 가설건축물에서 생활하고 있다.

기존 고용노동부의 입장은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해서는 안 되지만, 안에 가설건축물을 설치했을 경우 숙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건이 있고서야 고용노동부는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신규 사업자에게 고용허가를 내주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당장 열악한 숙소에 살고 있는 기존 이주노동자들의 주거권을 개선할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게다가 비닐하우스 ‘밖’ 가설건축물에 대한 대책도 공백이다.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을 단속하겠다는 노동부 조치에 따르면 비닐하우스를 벗긴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건 허용하는 셈이 된다. 정부 실태조사에서는 비닐하우스 밖 가설건축물을 이용한 숙소도 61.2%에 달했다. 농업경영자들은 정말 열악한 숙소는 극히 일부라고 하지만, 정부 통계는 70% 이주노동자의 주거가 그러하다고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숙소 문제가 단지 ‘나쁜 사장님’ 때문만은 아니다. 그 책임은 이를 무시해 온 우리 사회에게도 분명히 있다. 우리는 여태 이주노동자의 값싼 노동력으로 일군 농산품을 소비해왔으며, 그 대가는 이주노동자가 고스란히 지고 있었다. 단순히 농장주와 이주노동자가 대립하고 자리싸움을 하는 문제로 여길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어떻게 대해 왔는지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권리’가 아닌 ‘관리’, 고용허가제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고 있는지 가장 잘 드러나는 제도가 바로 ‘고용허가제’이다. 이주민단체와 노동계에서 이번 사건의 주요한 원인으로 꼽는 것 역시 고용허가제이다. 고용허가제란 내국인 고용을 노력하였으나 노동력을 구하지 못한 사용자에게 특정한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해당 외국인은 해당 사업주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후 입국하여 노동계약 기간 동안 자신을 고용한 사업자의 사업장에서만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제도를 말한다. 즉, 이주노동자가 국내에서 ‘노동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것이 아닌, 사용자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또한, 조항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이주노동자는 노동계약 기간 중 자신의 희망과 선택에 따라 직장을 선택하고 이직할 수 없다. 이주노동자는 사용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사업장을 옮길 수 있고, 한 번이라도 자신의 귀책사유로 사업장을 옮길 경우엔 다시 입국이 불가능하다. 사용자의 임금체불, 폭행 등 부당행위가 있을 경우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으나, 그마저 변경은 3번밖에 할 수 없다. 거기다 사업장을 변경하고자 할 경우엔 이전 고용주의 ‘확인서’가 필요하다. 퇴직한 후에도 이주노동자의 체류를 막기 위해 반드시 3개월 이내에 새로운 사업장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즉각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거나 국외로 추방된다. 결국 고용허가제에 의해, 이주노동자의 운명은 철저하게 고용주의 손에 달려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고용주가 임금을 체불하고, 비닐하우스 같은 숙소를 제공하더라도 마음대로 일을 그만두고 나올 수가 없다. 정부에서 숙소 기준을 마련했다 한들 지켜지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외국인도 기본권 주체성을 갖고, 내국인과 같이 근로의 권리 즉 ‘일할 자리에 관한 권리’와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가 보장된다고 결정하고 있다. 이는 직장선택의 자유, 건강한 작업환경과 정당한 보수, 합리적인 근로조건의 보장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등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이동 제한 규정에 대해서는 직장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이유는 ‘외국인 근로자의 무분별한 사업장 이동을 제한함으로써 내국인 근로자의 고용기회를 보호하고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효율적인 고용관리로 중소기업의 인력수급을 원활히 하여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이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외국인근로자에게 3년의 체류기간 동안 3회까지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대통령령이 정하는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추가로 사업장변경이 가능하도록 하여 외국인근로자의 사업장 변경을 일정한 범위 내에서 가능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명백히 불합리하다고 할 수 없고 직장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라고 결정했다.
헌법재판소는 외국인의 기본권을 존중한다고 하면서, 고용허가제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 모순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는 즉,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은 내국인과 동일한 수준으로 보장하지 않고, 내국인의 이익을 위해서 이주노동자의 권리는 제한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규정은 이미 국제노동기구(ILO)나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등으로부터 ‘국적을 이유로 한 차별 없이 노동권과 직장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우려와 권고를 받은 바 있다. 현재의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을 활용하면서 행정적인 ‘관리’를 수월하게 하는 목적이 크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비롯해 법과 제도들이 견지하는 이런 관점 때문에 이주노동자의 권리란 그저 허울 뿐이게 되고, 이주노동자는 현실에서 갖은 차별과 고통에 놓이게 된다. ‘사업장 변경을 3회 정도 가능하게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유를 보장한다’라고 판단했지만, 현실에선 전혀 그렇지 못했다. 고용부의 ‘외국인근로자 사업장 변경 사유 고시’에 따르면 비닐하우스가 숙소로 제공돼 당국에서 개선명령을 받았음에도 사업주가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이주노동자가 자신의 귀책 사유 없이 사업장 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엔 사업장 변경 횟수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고용부에 따르면 2015~2018년 이주노동자가 귀책 사유 없이 사업장을 변경한 경우가 매해 8,000~9,000건이 되지만 그 중 기숙사 상태가 나빠 변경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 숙소가 열악하며 사고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현실이 명백함에도 말이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아야 할 때
노동부에서는 속헹 씨의 사인을 ‘간경화 합병증’이라고 밝혔고, 이에 ‘비닐하우스 숙소로 인한 동사는 아니다’라며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녹록지 못한 농장주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이주노동자와 농장주의 갈등을 부추기는 듯한 여론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건을 통해 돌아보아야 할 문제들은 따로 있다.
속헹 씨는 최초 입국 후 3년간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고, 작년에야 지역건강보험에 가입했다. 결국 그는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병으로 사망했다. 실제 이주노동자의 65%는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비닐하우스 숙소는 주거로 적합하지 않음에도 당연하게 이주노동자에게 제공되고 있으며, 이주노동자는 고용주에게 종속되다시피 하여 부당한 처우에 거스를 수도 없다. 고강도 장시간 노동,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건강이 악화되어도 치료도 제대로 받기 힘든 환경에 있으며 이는 모두 분명한 사실이다.
많은 경우에 ‘자국민 이익과 보호’는 이주민의 권리보다 우선한다. 표면적으로는 이주노동자도 당연히 국민과 같이 기본권을 존중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는 은근히 그어지는 경계선 밖으로 밀려나고 사회의 보호 밖에 놓인다. 코로나가 확산되기 시작하던 당시, 이주노동자는 의료서비스나 감염병 정보에 접근하기조차 힘들었다. ‘내국민’을 지키기 위한 K-방역은 그에 해당하지 않는 이주노동자에게 마스크나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고, 사업장에 스스로를 가두게끔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제도는 이주노동자를 그저 노동력으로 활용하고 관리하는 데에만 골몰했고, 이주노동자가 와서 ‘살아갈’ 것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이들이 일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당연히 필요한 주거, 건강, 언어를 사용한 일상생활 등을 누리기 위한 조건은 너무나 열악하다. 이주노동자가 주로 종사하는 부문은 내국인이 기피하는 3D업종, 즉 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일자리들이다. 주로 제조업·광업·건축업 등이 해당하며 한국 산업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을 싼 값에 활용하면서도 고용허가제를 통해 이주노동자를 편하게 관리해 왔다. 이주노동자는 우리 사회에서 분명히 한 자리를 차지하여 살아가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쉽게 쓰고 버리듯이 ‘국민이 아닌’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외면해 왔다. 우리는 이주노동자의 싼 노동력에 기대서, 수많은 죽음 위에서 내국인이라는 지위를 누리고 있다. 법이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고 이주노동자를 고통받게 만드는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가장 대표적으로 고용허가제가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태도에 있다. 더 이상의 사고를 막기 위해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존중하려는 의지와 노력, 여기서 비롯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