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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돌봄노동자

수습위원 인도 (yangyo03@naver.com)

팬데믹과 돌봄노동자

팬데믹 1년, 전염병이 가져온 경제 불황이 외면할 수 없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방학에도 북적이던 전남대 후문 거리가 텅텅 비고 유리창은 임대 포스터로 도배되었다. 여성 노동자가 몰려 있는 산업도 크게 타격을 입었다. 교육·서비스업, 도·소매업, 숙박·음식업에 종사한 대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이 고용한파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중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한다.

‘돌봄노동’이란 다른 사람에게 의존을 해야 하는 환자나 노인, 어린이와 같은 사람을 돌보는 모든 활동을 이른다. 이용자의 건강 회복을 돕거나 이용자가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모든 활동, 예를 들면, 밥을 지어 먹이거나, 집을 청소하고, 몸을 씻기고, 기저귀를 가는 등 모두 대면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직업 특성상 접촉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요양병원이나 유치원 등 돌봄기관은 집단감염에 쉽게 노출된다. 실제로 우리는 종종 재난문자를 통해 돌봄기관의 집단 감염 소식을 종종 보게 된다.

그렇다면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돌봄을 멈추어야 할까? 돌봄노동자에게 돌봄을 그만두게 하는 것은 실업을 의미하고, 돌봄이 필요한 노인, 장애인, 어린이 등에게 돌봄서비스를 못 받게 하는 것은 위험, 고통, 인권 침해를 의미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돌봄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 속에 누군가는 위험을 무릅쓰고 거리를 좁혀야 한다. 이러한 고위험 필수노동을 감당하고 있음에도 돌봄노동자는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작년 3월, 간병인과 요양보호사는 보건 의료 인력이 아니라는 이유로 마스크 지급에서 제외되었고, 재가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는 방문할 집이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지 여부조차 알 수 없었다. 감염된 뒤에 스스로 자가격리에 들어가는 게 안전 방침의 전부였다. 정부와 제공기관은 돌봄노동자를 보호하지 않았고,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에 감염되는 사태에 대해서도 책임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고용 불안정과 노동권 침해 문제도 심각하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돌봄노동자들이 해고와 단시간 고강도 압축 노동, 휴게 시간 없는 장시간 노동 등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이와 같은 문제는 팬데믹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단지, 돌봄노동자의 대다수가 여성 고령노동자인 탓에, 그리고 돌봄노동이 누구나 할 수 있는 노동으로 무시당한 탓에 그들의 목소리가 묻혔던 것이다. 돌봄노동자는 노동자로서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지만, 본인이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가벼운 고용환경 때문에 인권·노동권 얘길 꺼내지 못하고 있다.

팬데믹은 돌봄노동자가 우리 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그들의 노동이 저평가되어 왔음을 알려준다. 우리,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각 직군이 처한 상황을 보다 면밀히 살펴보자. 질병 위기 및 경제 위기 속 돌봄노동자가 마주한 가장 직접적인 위험을 시작으로, 돌봄노동자가 위험에 노출되는 원인을 차근차근 따라가 그 뿌리가 되는 돌봄노동에 대한 인식을 캐내보자. 그래서 돌봄을 멸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정부와 기관의 노동자를 책임지지 않는 행태로 연결되고, 결과적으로 돌봄노동자를 위험에 내몰고 그에 대한 책임까지 개인에게 전가한 구조적인 문제를 파헤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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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가 마주한 위험

요양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은 평균 연령 60세인 여성 고령노동자들이다. 50대에 자녀 양육을 마치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돌봄노동을 선택하는 이가 대다수다. 가정에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이들에게 요양노동은 결코 ‘좋은’ 일자리라고 할 수 없다.

 물티슈처럼 쓰고 버려지는 재가요양보호사 

재가요양보호사는 대부분 단시간으로 계약을 맺는다. 이들이 여성이라 고용주들이 집안일과 노동을 병행해야 한다는 핑계를 앞세우기 때문이다. 재가요양보호사는 보통 최저임금으로 월 60시간 일하고 60만 원 정도 받는다. 이는 이동시간을 근무 시간에서 제외하고 계산한 금액이다. 하루에 여러 이용자의 집을 방문하기 때문에 이동시간이 생길 수밖에 없음에도 근무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또한,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려고 월 59.5시간으로 계약하거나,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11개월을 계약하는 사례도 많다.

노동조건뿐 아니라 고용 불안 또한 심각하다. 일을 계속 할 수 있을 지, 없을 지가 이용자의 상황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용자는 사망, 시설입소, 이사, 단순변심 등의 이유로 서비스를 중단할 수 있는데 이것은 곧 요양보호사의 해고를 의미한다. 또한, 재가요양보호사의 실직에 대한 어떠한 보호장치도 없기 때문에 이들은 붙잡을 동아줄도 없이 무급휴가를 쓰거나 권고사직을 당한다. 실제로 코로나19가 창궐한 이후, 많은 이용자들이 접촉 감염을 우려해 서비스 중단을 통보했고 요양보호사들이 속수무책으로 일자리에서 쫓겨났다. 65세 이후에 취업한 이는 실업급여도 받지 못했다.

설사 일을 계속하더라도 감염 위험을 안고 일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방문할 가정이 안전한 지조차 알 수 없고, 마스크 등 감염예방 물품을 본인이 구입해야 한다. 심지어 일부 기관은 이용자의 체온계, 마스크를 직접 준비하여 예방하라고 압박을 넣는다. 정부나 제공 기관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없어 요양보호사가 모든 상황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안전뿐만 아니라, 저임금, 고용불안, 건강까지 말이다.

 밥 먹고 돌아서서 일하는 시설요양보호사 

재가요양보호사와 반대로, 시설요양보호사는 최소 인력으로 장시간 근무를 버틴다. 보건복지부 시행령에 따르면 시설요양보호사의 인력 배치는 돌봄 어르신 2.5명당 1명 이상을 고용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설이 24시간 돌봄을 제공하기 때문에 기준에 맞춘 인력으로는 노동시간을 준수하기 어렵다. 때문에 노동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진다.

2교대를 하는 경우,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15시간을 근무하는데, 그중 3-7시간은 휴게시간으로 잡는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연장노동과 야간노동에 해당할 경우에 시급의 50%를 추가로 지급해야 하고, 동시에 이뤄질 때는 중복해서 받아야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야간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지정하고 임금을 주지 않는다. 또한, 독자적인 휴게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실제로는 휴게시간조차 부여하지 않고 있다. 진은정 전국요양서비스노조 부산경남지부장은 “일이 힘들고, 인력이 없고, 일자리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한 요양시설에서 1년에서 3년 미만으로 일하는 비율이 90%” 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물기 때문에 넘어져 골절을 당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폭력적인 사용자로 인해 피멍이 생기기도 한다. 사용자를 들어서 옮기는 일이 많아서 근골격계 질환을 얻기 쉬운데 이 중 어느 것도 산재로 승인받지 못한다. 요양보호사들이 대체로 고령노동자이기 때문에 원래 가지고 있었던 병으로 치부해버린다.

요양보호사 자격취득자는 160만 명이 넘고, 시설이나 재가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는 41만 명이 넘는다. 직업으로 삼는 이들 만큼이나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은 요양은 필수노동이다. 게다가 요양은 육체적인 노동과 더불어 이용자와 대면하면서 관계·사회적 노동까지 포함한 전문적인 노동이다. 따라서 요양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요양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들에게 사회적 보상과 안정적인 지위가 줌으로써 요양노동의 인식을 높여나가야만 한다.

장애인도 밤에는 잠을 자지 않느냐

장애인 중에는 가족조차 돌봄을 맡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장애인활동지원사의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진 않았지만, 긴급 돌봄이나 이용자의 자가격리 등으로 노동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나 노동만 늘어나고 필요한 만큼의 쉼은 충족받지 못하는 게 문제다.

2018년에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장애인활동지원사에게 4시간에 30분, 8시간에 1시간의 휴게시간을 부여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특례업종이었던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이용자의 필요에 의해 휴게시간의 부여시기가 변경되고 연장근무가 제한 없이 가능했다. 마찬가지로 특례업종이었던 화물 운송 노동자와 집배 노동자의 과로사가 사회적으로 문제시되자 특례업종이 축소되면서 장애인활동지원사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2년이 되어가지만 활동지원사는 여전히 휴게시간이 없다.

보건복지부는 휴게시간을 보장할 것은 재차 권고했지만, 휴게시간 적용에 필요한 법적인 기틀은 아무것도 마련하지 않았다. 정부에서 제대로 조치하지 않으니 기관에서도 휴게시간을 보장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 개정의 의미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가 국가기관과 실질적 고용주로서 제도를 개선하고 활동지원사에게 휴게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지금의 제도 하에서는 장애인이 자가격리해야 하는 경우, 한 명의 지원사가 14일간, 24시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활동지원가는 방문노동 특성상 감염병에 노출되기 쉬운 위험을 안고 있다. 여타의 방문노동이라면 이용자가 자가격리에 들어갈 경우 일부 서비스를 제한할 수 있지만, 장애인 활동지원가의 경우, 장애인이 코로나에 감염돼도 돌봄노동 서비스를 중단할 수 없다. 장애인의 인권과 장애활동지원가의 노동권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지금, 정부의 해결책이 필요하다. 정부의 장애인 안전 대책이나 감염병 위기 매뉴얼에는 장애인을 고려한 사항이 반영되어야 하고, 감염병 유행 시기에 밀접 접촉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 활동지원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대책이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장애인 활동 지원과 노인 돌봄 같은 필수적인 서비스는 공적 영역에서 책임지고 담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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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교육

초등돌봄교실은 2014년을 기점으로 확대되었다. 자녀를 둔 부부 중 다수가 맞벌이를 하다보니 아이들에 대한 돌봄이 사회적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었다. 여성 개인이 부담하던 양육을 학교교육으로 책임져 준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내세운 정책이다. 돌봄교사들은 정규수업이 끝난 이후부터 6시 전까지 학습지도나 프로그램, 상담, 보호, 교실관리 등을 한다. 방학에는 오전부터 아이들을 만난다.

그러나 2017년부터 교육청은 돌봄교실을 감축시키겠다고 통보해왔다. 학생들의 수요가 없고,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위탁 돌봄 교사들은 월급제가 아니라 시급제로 받는다. 임금을 시급제에서 월급제로 바뀌게 되면 교통비, 급식비, 명절휴가비를 추가로 지급해야하는데, 이를 예산으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하루 4시간에서 주당 15시간으로 단시간으로 계약하고 돌봄교실과 교사를 줄여야한다고 말한다. 돌봄을 교육 밖의 영역,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기기 때문에 돌봄을 정식 노동으로 대우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교육청은 2015년에 돌봄교사의 계약을 전면 위탁 형태로 전환했다. 교사와 1:1 계약이 아니라 둘 사이에 위탁업체가 낀 고용형태는 돌봄교사를 싼 임금에 부리고 해고가 쉽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2016년에는 공개입찰제를 도입했는데, 위탁업체가 제시한 금액을 보고 낮은 가격을 제시한 위탁업체를 입찰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돌봄교실을 ‘상품’으로 인식하고, 위탁업체간의 경쟁을 심화시켰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지원받는 금액이 사라져 필요한 교재도구를 구입하지 못하는 셈이 됐다.

2020년, 교육청은 돌봄 교실을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하는 ‘온종일 돌봄 특별법안’을 제정했다. 돌봄의 책무를 떠넘기기 위함이었다. 교과 교육을 학교의 주기능으로 여기는 일부 교사들은 “돌봄은 지자체로 이전하고 학교는 온전한 교육과 전인적 성장을 이루기 위한 곳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해, 돌봄을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 부담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에 학부모 단체는 성명을 통해 반대입장을 밝혔다. “돌봄교실을 오히려 학교 안으로 법제화해야 한다”면서 “교육부는 예산과 인력을 충원해 안정적인 돌봄교실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전체 학생 수는 줄어들어도 돌봄 교실은 늘고 있다. 맞벌이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의 비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돌봄교실이 없다면 아이들은 장시간 홀로 방치될 수밖에 없다. ‘공적돌봄’의 확대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위에서 살펴본 문제들, 교사의 돌봄행정으로 인한 부담, 돌봄교사의 저임금 및 고용불안정, 아이들의 돌봄공백을 해결하는 열쇠는 교육청이 돌봄 인력과 예산을 확충하는 것이다. 돌봄 교사들의 당당한 노동을 인정하고 합리적인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 이는 일차적으로 노동자 당사자들을 위한 것이지만, 이차적으로는 공적 돌봄의 필요성이 점점 커지는 사회 속의 아이들과 학부모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돌봄이 왜?

이렇게 몇가지 직군의 돌봄노동자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대체로 고용이 불안정하고 노동환경이 열악하다. 이들 노동의 공통점인 ‘돌봄’이 저주라도 되는 듯 하다. 실제로 저주인 건 아닐까? 돌봄노동은 왜 나쁜 일자리가 되었을까?

이는 돌봄이 여성의 일로 여겨진 먼 과거에서부터 시작된다.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이 무급으로 돌봄노동을 무제한 제공하는 것이 여성 특유의 ‘이타성’이라고 상찬하면서 대가 없이 그들의 돌봄노동을 착취해왔다. 돌봄은 대체로 딸과 며느리 등 여성에게 떠맡겨진 채 그 값어치가 무시됐고, 여전히 제대로 평가받지 못 한다.

18세기 위대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후예들은 돌봄노동의 값어치를 주목하지 않았다. 돌봄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이른바 ‘비시장 영역’의 노동으로 값을 매기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다수의 경제학자는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빵 굽는 이가 자비롭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이라는 초기 경제학의 어록을 되뇌며, 인간의 이기심이라말로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만인을 이롭게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오늘날 이뤄지는 많은 돌봄노동은 개인들의 일상생활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하고 현세대와 다음 세대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에 노동 이상으로 큰 역할을 하지만 그만한 대우나 지지를 받진 않는다.

이에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낸시 폴브레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인간의 이기심에 기반한 경제적 이해관계의 합리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 여성의 경우에는 애초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등의 이기심이 허용돼 있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스미스의 식탁을 차린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빵 굽는 이가 아니라 아내나 어머니라며, ‘보이지 않는 가슴’의 경제, 사랑·의무·호혜 등 가족 가치에 기반을 둬 움직이는 또 다른 힘을 제시한다. 윤자영 충남대 교수는 이 돌봄경제가 “개인과 가족이 밥을 짓고, 청소하거나 아이의 기저귀를 갈며 노인을 수발하는 행위는 경제적 후생을 높이는 소득과 마찬가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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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돌봄을 위하여

코로나19로 재가요양보호사와 보육교사 등 돌봄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어 생긴 돌봄공백에 가정 내 여성들이 투입되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에 따르면, 작년 7월까지 가족돌봄휴가 신청자 12만 6천명의 62.1%가 여성이다. 통계청의 자료에서는 7월 가사활동 중인 비경제활동인구가 남성은 전년 동월과 비교해 4천명 가량 늘었지만, 여성의 경우 21만 3천명 증가했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포괄한 사회 전반의 돌봄이 여성에게 치중되어 있다. 돌봄노동의 삯은 무시와 차별이다. 돌봄책무를 떠안은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생산성이 낮은 존재가 되어 안정된 일자리를 얻을 기회에서 항상 제외되어 왔다. 돌봄을 감당하기 위해 경력이 단절되거나, 돌봄을 빚질 다른 여성의 도움을 절실히 구해야한다. 또, 여성은 돌봄을 담당하지, 생계를 부양하진 않는다는 프레임 때문에 경제 위기에 가장 먼저 해고선상에 오른다 이런 연유로 경제위기에 여성 노동자가 가장 먼저 잘리고 가장 나쁜 일자리로 복귀되어 왔다.

나쁜 일자리 중 하나인 돌봄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정과 저임금, 장ㆍ단시간 고강도 노동, 노동권ㆍ건강ㆍ인권 침해 등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문제를 본인의 몫으로 짊어져왔다. 팬데믹 이후엔 더 악화되어 접촉으로 인한 질병 감염 위험이 생겼으며, 저임금 문제와 실업 위기가 극심해졌다. 긴급돌봄으로 인해 장시간 노동도 늘었다. 그럼에도 돌봄노동은 여전히 저평가되어 누군가에겐 차별과 고통이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박하게 필요한 서비스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 관점에서 돌봄은 “인류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준 노동”이며 “어느 시점에서도 멈출 수 없는 필수노동”이라고 말한다.

작년 5월,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이 노동자들은 건강의 위험을 감수해가면서 필수적인 돌봄과 서비스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매일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적절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핵심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필수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했다. 의료 종사자와 준의료활동 종사자, 예를 들면 해당 건물 청소원이나 경비원, 구내식당 직원 등 필수노동자의 임금을 시간당 4달러씩 인상했다. 또한 한 달에 100시간 넘게 근무할 경우 250달러를 받게 된다.

이처럼 우리도 코로나19가 몰고 온 돌봄의 위기를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누군가가 돌봄을 과중하게 부담하며 불합리한 보상과 인정 없는 착취 속에 생산·재생산 노동을 수행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재난 속에서도 그 피해가 취약한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몰리지 않고 양질의 상호돌봄이 지속될 수 있는 대안사회를 만드는 것이 모두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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