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두기 속 여성의 권리는 없었다
편집위원 병호 (od0725@daum.net)
지난겨울 중국에서 발원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 19)이 전 세계적인 대유행(이하 팬데믹)을 보이면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다. 코로나 19에 대한 정보는 턱없이 부족했고, 정부의 대책이나 언론보도 또한 갈피를 찾지 못했다. 정부 브리핑과 언론 보도는 코로나 19 ‘방역’에 초점을 맞추어 확진자의 증감, 이동 경로, 이후의 대책에 대해서만 다루었다. 하지만, 정부 브리핑, 언론 보도가 드러내지 않은 문제는 많이 존재한다.
그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여성 문제’이다. 코로나 19라는 특수한 상황 속 여성은 고용 불안정, 돌봄 집중 문제, 급증한 가정폭력 등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존재했던 문제가 더 심화했을 뿐이다.
이렇듯 다양한 문제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코로나19 속 핵심적인 여성 문제로 대두한 가정폭력 문제, 여성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임신 중지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려 한다. 페미니즘적인 접근을 통해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자.
가정폭력 급증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로 코로나 19가 확산함에 따라 세계 각국은 이동 제한령을 비롯한 격리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 또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격리대책으로써 고강도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행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거리두기, 자가격리가 일상이 되면서 여성에 대한 가정폭력 문제가 세계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감염병을 막기 위한 격리정책이 오히려 가정폭력 증가로 이어진 것이다.
나라별 통계를 살펴보자. 프랑스의 경우 이동제한령이 내려진 이후 전국적으로 가정폭력이 32% 증가했고, 영국과 북아일랜드는 20%, 미국의 경우엔 10% 증가했다. 이에 반해 한국은 가정폭력 신고가 작년 동 기간 대비 4.9%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보고되었다. 선진국과 달리 수치가 줄어들었으니 한국에서 가정폭력은 잘 대처가 되는 걸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가정폭력 신고 수 자체는 줄었지만,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2~3월 총 상담 건수는 작년 동기간과 비교해서 전체 상담 중 가정폭력 상담이 차지하는 비율은 1월 26%에서 2~3월 40%대로 급증했다. 신고 수는 줄었지만 상담 수가 증가한 것에 집중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가정폭력 신고율은 유의미한 데이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2019년 전국가정폭력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배우자 폭력 피해 경험자 중 85.7%는 피해 당시나 그 이후 경찰, 여성 긴급전화 1336, 가정폭력상담소 등에 도움을 청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경찰신고율만으로 한국 내 가정폭력의 증감을 판단하는 건 의미가 없으며 상담 수 증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코로나 19가 세계적으로 확산함에 따라 가정폭력 또한 급증했다. 그렇다면 세계 각국은 가정폭력의 급증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대체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섬세한 조치를 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코로나 19기간 동안 약국이 가정폭력 신고 기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약사에게 “마스크19 주세요.”라고 말하면 약사가 마스크를 주면서 가정폭력 신고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영국의 경우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와 함께 있을 때도 슈퍼마켓 직원에게 비밀 코드를 통해서 피해 사실을 알리는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홈리스와 가정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긴급지원대책을 시행했다. 독일은 바로 응답 가능한 채팅, 지속적인 이메일 상담 운영, 피해 여성들과 아동을 위한 호텔 임대, 가정방문 수행 등을 실행하고 있다.
여러 가지 대책을 제시하고 있는 세계 각국과 달리, 한국은 가정폭력에 대한 별다른 대책이 없다. 사실 한국 사회는 코로나 19 이전부터 가정폭력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가정폭력은 정서적 폭력, 성적 폭력, 신체적 폭력, 경제적 폭력 순으로 발생하며, 심리적 학대와 같은 정서적 폭력의 발생 비율은 신체적 폭력보다 4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국에서 정서적 폭력은 폭력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경찰에게 가정폭력 신고를 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신체적 폭력의 흔적이 없으면 응급조치 및 긴급 임시조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행여, 가정폭력으로 처벌을 받더라도 대부분 불기소처분이 되거나 가정 보호사건으로 송치되어 가해자에 대한 상담 등이 명령받을 뿐이다.
새롭지 않은 가정폭력, 지금이라도 해결하자.
가정폭력을 비롯한 여성을 향한 폭력은 남녀 간 불평등한 힘의 관계에서 발생하고, 여성의 종속적인 지위를 고착시키며 여성의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침해한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가정 내에서 여성의 경제적인 수입이 적은 상황과 그것이 만든 여성의 낮은 지위, 여성이나 아동을 물건으로 보는 시각이 가정폭력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폭력은 코로나 19가 아니라도 해결 노력이 필요한 문제다. 코로나 19로 가정폭력이 쟁점이 된 지금부터라도 진지하게 해결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전부터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여성폭력의 적극적인 해결을 시도하는 세계 각국의 사례처럼 한국 또한 여성의 관점에서 정책을 고민하고, 기존의 미흡한 대처를 개선해야만 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여성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그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
임신 중지 문제
코로나 19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서 격리정책이 시행되면서 의료 시설에 대한 접근 자체가 어려워졌다. 이로 인해 안전한 임신 중지 서비스를 받는 것에 많은 제약이 발생하고 있다. 임신 중지란 여성이 임신 중 스스로 임신을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한 해 임신 중지는 약 5천만 건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추산되며, 매일 약 12 만 5천 건의 임신 중지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100% 완벽한 피임 방법이란 없는 상황에서 임신 중지와 관련된 의료행위는 일상적이고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로 요청되지만,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에서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안전한 임신 중지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뿐 아니라 콘돔이나 피임약 등의 생산, 유통, 수출에 영향을 받으면서 안전한 임신 중지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 놓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러 국가가 임신 중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법적 규제를 바꾸거나 완화해 나가고 있다. 지난 3월 영국의 경우, 약물 임신 중지의 경우 기존에는 약을 먹기 위해선 클리닉을 방문해야만 했지만, 관련 규제를 바이러스 종식까지 완화하기로 했다. 아일랜드의 경우, 클리닉 방문이 어려운 여성들이 있기 때문에 전화를 이용하여 원격진료를 통한 임신 중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승인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약물을 통한 임신 중지의 기간을 기존 임신 7주에서 9주로 확대하는 긴급법안을 발표하였다.
세계 각국의 대응에서 알 수 있듯, 임신 중지는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로 보장되어야만 한다. 여성에게 임신중지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즉 ‘임신 중지권’은 여성이 임신할 자유 혹은 임신을 하지 않을 자유 등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할 권리이다. 또한 원치 않은 임신을 중단하기 위해 불법적인 시술을 받지 않고, 건강하게 시술을 받을 수 있는 권리이다. 남성과 다른 재생산 능력을 지닌 여성이 보장받아야 할 보편적인 권리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임신 중지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세계 각국의 적극적 대응과 달리, 한국은 별다른 대책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지난해 4월 11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처벌조항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음에도 임신 중지를 위한 후속 절차들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법불합치 결정의 핵심은 ‘국가가 여성의 자기 결정권, 건강권, 평등권을 보장해야 한다.’였지만,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
임신중지에 대한 어떤 대책도 제시하지 않는 정부에게 기댈 수만은 없다. 코로나 19로 인해 안전한 임신 중지가 늦춰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에게 임신 중지 약물 도입과 제대로 된 법 개정을 요구하고, 그것들을 통해 여성의 권리를 확충해나가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코로나 19와 같은 세계적인 위기 상황에서 여성은 사회의 당당한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침해받는다. 여성의 관점에서 고민되지 않은 거리 두기 정책 속에서 폭력의 위기에 놓여있고, 임신중지 서비스가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로 여기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몸을 통제할 권리는 더욱 제약받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 더 나아가 여성이 처한 상황 자체를 타개하기 위해선 여성의 권리와 여성이 처한 사회·경제적인 조건을 기준으로 하는 페미니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침묵하는 한국 정부 대신 문제 해결을 위해 대안을 제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여성들 스스로 성과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사회를 위한 운동이 만들어지고 있고, 여러 여성단체에서도 포럼을 통해서 코로나 19 속 여성 문제를 발화하고 있다. 우리도 이 움직임에 함께하며 대안을 그려나가자. 여성들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연대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고민해보자.
